[사회혁신 트렌드리포트]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명선’ 같은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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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는 더 이상 이상하게 들리지 않고, ‘재난’은 우리 사회 깊숙이 들어와 이제 일상 의 영역이 됐다. 화재, 수해, 지진을 비롯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까지, 그야말로 무엇도 예측할 수 없이 몰아치는 온갖 재난들. 지구 환경 악화로 찾아온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재난은 더 이상 먼 미래 혹은 다음 세대가 떠안게 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우리의 문제이자 오늘의 사건이다.

재난의 형태와 유형이 변한 만큼 우리의 인식과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에겐 이전과 다른, 다른 질감과 패턴의 ‘생명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졸음과 한숨으로 가득한 재난 대응 교육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역동적인, 심지어 재미있는 재난 대응 훈련을 전파하는 라이프라인코리아 김동훈 대표를 만났다.

김동훈 / 라이프라인코리아 대표

기후재난,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실천적 관점에서 라이프라인코리아는 어떤 회사이며,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라이프라인코리아는 재난 위기관리 회사입니다. ‘라이프라인’은 재난 발생 시 생존과 관련된 전력, 통신, 식량 등을 일컫는, 한마디로 ‘생명선’이라는 뜻이고요. 개인적으로 회사를 차리기 전부터 약 20년간 24개국에서 국제 구호 사업을 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적인 구호 훈련부터 재난에 대비할 수 있는 교육 훈련까지, 재난 시 벌어질 수 있는 각종 위기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필요한 건 모두 다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재난 교육 및 대응 훈련이 중점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에서 실행하는 다양한 재난 훈련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 맞게 변화시키거나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실제 교육에 적용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강원도 산불 등 실제 재난이 발생할 때는 현장에 가서 직접 구호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설립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원래 계획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국내외의 대안적 재난 구호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재난이 발생해야 가능한 일이잖습니까. 그래서 평상시에 무슨 일을 할까 고민하다가 교육 개발 훈련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특정 계층에 특화된 재난 대응 교육을 하는 강사도, 매뉴얼도, 콘텐츠도 전혀 없는 상황이라 제가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무림의 고수’들을 모아서 재난 대응 훈련 프로그램을 구성했는데 반응이 괜찮아서 여러군데에서 요청이 들어오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우리만이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고, 지금 우리나라 실정에서는 무엇을 하든 우리가 ‘최초’인 상황입니다.

재난 대응 훈련에 대한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요?

우리나라 재난 대응 훈련의 기준은 성인 남성에 국한돼 있어요. 가르치는 사람도 군복이나 유니폼 등을 입은 건장한 남성을 떠올리고, 실제로도 그렇고요. 20~30kg짜리 비상 배낭을 싸서 일주일씩 잠복하는 식의 교육은 노인과 아이들, 여성들이 감당하기 힘든, 대상자를 배려하지 않는 방식이에요. 젠더 감수성은 고사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만큼 갈 길이 멀죠.

울산 삼환아르누보 아파트 화재 때 이재민들을 호텔에 묵게 해서 떠들썩했잖아요. 이게 바로 재난에 대한 인식이 하향 평준화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에요. 대형 재난이 터지면 기자들도 그 지역 체육관부터 찾고, 그 앞에 진을 치고 있어요. 거의 관성에 가깝죠.

미국에서는 대피소에 가면 간이침대일 망정 개인 침대를 지급하고 사생활과 일상을 보호하고 유지하게 해줍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재난을 당하면 체육관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자야 하는 걸까요? 왜 재난을 당하고 호텔에 가서 무너진 일상을 재정비하면 안 되는 건가요?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을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내는 세금이 아깝지 않을 만큼 제대로 된 재난 서비스를 받아야 하고, 또 그런 인식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대표님께서 재난 대응 훈련을 다니며 느끼는 사람들의 관심과 반응은 어떤가요?

강의 전후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재난 교육이라고 하면 따분하고 부정적인 기억이 많아서 처음에는 다들 별다른 기대를 보이지 않습니다. 수용력도 떨어지고요. 그래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재미 요소를 중요시하는 ‘에듀테인먼트’를 추구합니다.

기존 재난 교육에서 듣지 못한 새로운 내용을 알려주고, 같은 내용이라도 전달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심드렁하게 왔다가 돌아갈 때 아주 즐겁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교육을 시행한 기업이나 기관은 거의 대부분 한 번 더 하자는 요청을 하고요.

일반인이 재난에 대한 대응법을 터득하는 방식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나 이론으로 배우면 안 돼요. 시범을 보이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해보는 것, 한 번을 배우더라도 감각이 남아 있게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강기든 소화기든 어쩌다 한 번이라도 경험해보면 실제 상황에서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라이프라인코리아의 주요 철학과 방향, 대표 성과가 궁금합니다. 특히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실천적 관점에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기후 재난은 아예 오지 않게 막는 법과 적응하는 법,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는 원인을 제거해서 막으려고 하지만 재난 분야에서 우리의 역할은 취약점을 제거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 원전을 없애고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면 저희는 원전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하고 준비하는 거죠.

대표적인 성과라기보다는 라이프라인코리아가 진행한 대규모 캠프이자 한국 최초의 재난 훈련이었던 ‘재난보호소 체험 캠프’를 예로 설명하겠습니다. 2018년 11월, 서울시자원봉사센터와 함께 노원청소년수련관을 빌려서 실제 대피소와 흡사한 환경을 만들고 가족 단위의 시민들을 모아서 1박 2일간 대피소 체험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경험에 집중했기 때문에 ‘교육’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훈련’이라고 표현했고요. 현재는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계획을 중지한 상태입니다.

현 시기의 주요 화두라 할 수 있는 코로나 팬데믹, 자원 순환, 도시 안에서 전환적 삶의 방식에 관해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와 관련해 진행 중이거나 계획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요?

제가 파주에 살고 있는데, 아프리카돼지열병(ASF)에 이어 코로나19까지 닥친 상태에서 말라리아도 발생했어요. 기후위기로 인한 문제는 이렇게 복합적으로 한꺼번에 찾아옵니다. 코로나19도 기후변화 때문에 생긴 거잖아요. 강원도 산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산불은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하지만 기후변화가 방아쇠가 되면서 더욱 대형화되고, 언제 어디에서나 일어나게 됐어요. 현실이 이렇다 보니 소방이나 의료 같은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훈련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방식에 집중해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그걸 알려줬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검사를 ‘드라이브 스루’로 하게 된것도 인천광역시의료원 소속 한 젊은 의사의 아이디어였습니다. 평상시라면 지방 의료원 의사 한 명의 의견 때문에 의료계가 움직이는 일이 가능했을까요? 재난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기후 재난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습니다. 소속, 경력, 나이 등을 모두 배제한, 오로지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유의미한 방안은 공동체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라이프라인코리아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대부분 커뮤니티 방재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포함한 어떤 재난 상황에서든 공동체성은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특별한 훈련이나 교육보다 그저 마을이나 단체가 모두 마음을 합하는 행사 또는 사업이 있을 때 거기에 ‘재난’을 얹어서 구상하고 실행해보는 게 더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러면 실제 재난이 닥쳤을 때 대응이나 복구도 훨씬 빨라질 겁니다.

대표님께서 생각하는 코로나19 이후,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라는 엄청난 위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되돌아볼 때입니다. 사실 포스트 코로나라는 말 자체가 이제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이 가진 역량과 힘을 제대로 쓰려면 민간 분야의 재난 대응 방식은 물론, 시스템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 부처에 찾아가서 ‘제도 만들어라. 정책을 수정해라.’라고 요구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재난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려면 지역 단체나 기관들이 매년 사업을 계획할 때 기후변화를 자기들의 주제로 세우고 그 내용에 무게를 둔다면 달라질지 모르지만, 그것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자원 순환, 기후위기 모두 중요한 문제고 심각성을 많은 사람이 통감하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궁금해지네요. 끝으로 라이프라인코리아의 방향과 목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해 코로나19 때문에 무산된 프로젝트가 한 두 개가 아니라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제 회사를 성장시키기보다 다른 사회적기업이나 조직과 각자의 기능을 결합해서 상생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쓰레기를 재활용해 마스크와 방재복 등의 재난 구호 물품을 만드는 ‘터치포굿’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그런 재난 생활 기술을 마을 공동체에 교육, 이전해서 모든 마을 공동체가 그런 기술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그럼 재난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와도 좀 더 유연하게 버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여러 사회단체와 벤처기업 등이 가진 기능들을 재난과 연결해서 ‘디펜더스’라는 거대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특별한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원두를 볶는 일이든, 꽃꽂이든 우리 일상 속 모든 게 가능합니다. 재난을 극복한다는 건 결국 일상성을 회복하는 거니까요.

글 l 박지선, 사진 l 강민구

* 본 내용은 서울혁신센터에서 기획/발행한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 트렌드리포트> 에 수록된 인터뷰입니다. 리포트 전문은 서울혁신파크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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